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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i's Story/오키나와 역사

Ep.01. 간단일본근현대사

by okiz 2020. 4. 10.

<에필로그>

 

오키나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일본의 역사를 소개 할까 한다. 오키나와도 일본사 및 세계사라는 큰 흐름에 벗어나서 생각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나라의 언어를 익히는 데에는 나 나름의 기준이 있다. 첫째, 언어는 그 나라의 여러분야 중 하나이기에 역사와 문화 등 함께 익힐 것. 둘째, 다른 나라의 언어를 학습하는 목적은 모국어를 폭넓게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것. 이에 따라 시리즈를 연재한다. 아울러 일본 관련 전공자나 전문가에 비하면 얕은 정보지만,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간결하게 작성하려 한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메이지시대부터 시작한다.

 

 

야마구치현(초슈번 일대). 출처=© OpenStreetMap contributors

 

 

가고시마현(사스마번 일대). 출처=© OpenStreetMap contributors

초슈번사스마번의 2대 세력의 연합으로 에도막부시대(1603~1867)가 끝나고 1868년 메이지유신이 시작한다. 초슈번(長州藩)은 현재 야마구치현(山口県)이고 사스마번(薩摩藩)은 가고시마현(鹿児島県)이다.


 

<사스마번과 류큐침공>

 

참고로 사스마번은 류큐침공(1609)과 관련있다. 그 과정을 간단히 하고 넘어가겠다.

 

1602년 센다이번 영내에 류큐선박 좌초▶도쿠가와 이에야스가 1603년 류큐에 선박을 송환▶송환을 조건으로 사스마에 보답을 요구(사은사)▶류큐는 끝까지 사은사를 거절▶이에야스가 수군을 일으키려하자 사스마 초대 번주가 승려를 류큐에 보내 다시 설득▶오히려 승려에게 모욕을 줌▶류큐를징벌하라는명령이 사쓰마에 내려옴


 <주요 인물>

 

1. 키도 다카요시(木戸孝允, 1833~1877)

 

키도 타카요시

 

1875년 운요호사건을 일으켜 이듬해 강화도조약 강제 체결을 주도한 인물이다. 원조 정한파(征韓論, 정한론은 일본이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는 사상)이며 조선에서 일본으로 파견한 조선통신사를 조공사로 착각했다.

 

2. 사이고 다카모리(西郷隆盛, 1828~1877)

 

사이고 다카모리. 출처=『幕末・明治・大正 回顧八十年史』(1933年出版)

후에 세이난전쟁(西南戦争)과 관련이 있다(Ep.04참조).

 

 3.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1830~1878)

 

오쿠보 도시미치

 

위의 세 인물(기도 다카요시,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은 메이지유신을 일으킨 '유신 삼걸(維新の三傑)'로 불린다.

 

4.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1841~1909)

 

이토 히로부미

 

초슈번 출신으로 메이지 헌법 기초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여 일본에서는 '헌정사의 아버지'로 불린다. 또한 지금의 일본 국회 격인 '제국 의회'를 개설 했고 총 여섯 번의 총리를 역임한다. 조선에 을사늑약을 강요했으며 후에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 된다.

 

5.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1863~1915)

 

이노우에 가오루

 

이토 히로부미와 매우 가까운 관계였다. 청·일 전쟁 당시 조선에 공사로 부임하여 공작활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6. 미우라 고로(三浦梧楼, 1846~1926)

 

미우라 고로

 

1895년 민비(명성황후) 시해를 주도한 인물이다. 이노우에 가오루의 추천으로 조선 공사의 후임으로 부임하였고 조용한 성격으로 인식 되었다. 그의 성격대로였을까. 이토히로부미, 이노우에 가오루, 미우라 고로 이 라인에서 민비 시해를 결정하여 실행에 옮겼으나 문서를 남기지 않는 작전을 쓴다. 이로 인해 아직 미궁속에 갖힌 내용이 다수 있다.

 

7.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内正毅, 1852~1919)

 

데라우치 마시타케

 

초슈번 출신으로 제3대 한국 통감을 역임(통감 : 일본이 을사늑약 체결뒤 대한제국 한성부에 설치한 관청)했다. 1910년 이완용 친일 내각과 한일 병합을 했으며 초대 조선총독이 되어 무단통치를 자행한다.

 

8.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1850~1924)

 

하세가와 요시미치

 

초슈번 출신으로 제2대 조선총독이 된다. 1905년 11월 이토 히로부미가 을사늑약을 강요했을 때 무력을 동원해 왕궁을 포위했던 사령관이다. 1919년 3·1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메이지 정부의 목표>

 

메이지 정부의 목표는 단순하다. 바로 '한반도를 일본의 영향 하에 두는 것'. 이에따라 첫 단계로 강화도 조약(조·일수호조규)을 1876년 체결한다. 

 

강화도 조약 제 1 조

조선은 자주국이며 일본국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조선은 자주국',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글 자체는 당연하고 타당한 표현이지만 내막은 사실 이렇다. 당시 청나라인 중국이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갖는 것을 부인하고 일본이 조선에 대한 새로운 종주국이 될 것이라는 의도가 숨겨진 것이다. 종주권이란, 한 국가가 국내의 범위 안에서 다른 나라의 내정이나 외교를 지배하는 '특수한 권력'이다. 즉, 일본이 조선에 내정간섭을 비롯한 모든 지배권을 갖는다는 불평등 조약인 것이다. 이후 한반도를 차지하기 위해 청일전쟁(1894), 러일전쟁(1904)를 자행하고 이듬해인 1905년에는 한국을 합병해 식민지화 한다. 


이렇게 일본은 조선을 발판으로 삼아 대륙으로 진출한다. 한편, 이 메이지유신을 이끌게한 사상가가 있었으니, 그 인물은 바로

'요시다 쇼인( 吉田 松陰, 1830~1859)'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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