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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방

그해 겨울, 그와의 첫 만남

by okiz 2021. 6. 4.

■ 2008년 12월

2008년 12월 겨울.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기말고사를 막 끝낸 참이었다. 강원도에서 서울로 올라온 터라 대학 친구들과는 데면데면했고, 줄곧 혼자 다니기 일쑤였다. 취미라고는 옛 서적을 찾는 일이었는데, 마침 신설동 집에서 청계천 헌책방 거리까지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시험이 끝난 점심, 나는 집에 짐을 내려놓고 곧장 청계천거리로 향했다.

헌책방 마다 특징이 다양했다. 절판인 책, 정말 오래된 책, 혹은 과거 해외에서 들여온 책. 좀처럼 구하기 힘든 서적이 즐비했다. 유독 한 책방 풍경이 마음에 들어 그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5-6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 둘은 장기를 두었다. 책방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담배를 물고 그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입구에서 쭈뼛거리는 나를 발견한 주인은, 이내 무얼 찾느냐 물었다. 나는 책 세 권의 제목을 적은 쪽지를 건넸다.

『偶像과 理性』, 『轉換時代의 論理』, 『自由人, 자유인』

내가 이 곳에 들른 이유는 아저씨들이 장기를 두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했지만, 다른 곳에서는 내가 찾던 책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주인장이 사다리를 타고 다락방으로 올라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책 네 권을 갖고 내려왔다. 세 권은 내가 찾던 책이었다. 나머지 하나는 이 세 권의 책을 밖으로 꺼내줘서 고맙다며, 대학생 같은데 선물로 주겠다는 것이었다.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힌 2만원을 건넸다. 거스름돈을 받은 나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책방 주인장이 나를 불러 세웠다. 선물로 건네준 책과 관련 있는 사람을, 저기 앞에 있는 다리를 건너면 볼 수 있단다. 시간나면 한번 가보길 권했다. 딱히 할 일이 없었던 나는 알겠다며 그 쪽으로 향했다. 다리 앞에 다가가자 바닥에 여러 문구들이 박혀 있었다. 그저 잘 꾸몄다는 생각으로 다리를 건넜고, 어느 동상 앞에 섰다. 아래를 보니 이름 석 자가 새겨있었다.

그렇다. 눈이 소복이 쌓이던 그해 겨울, 나는 전태일 열사와 처음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 2020년 12월

위의 세 권의 책을 구매한 이유는 순전히 우리 앞집 할아버지 때문이었다. 그 할아버지와 위의 책 저자의 왕래가 종종 있었다는 사실을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다. 자본주의와 당대 정치체계를 논리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했던 리영희 교수, 그리고 삶을 자연의 섭리로 이해하고 통합하려던 앞집 할아버지. 이 둘을 쫓는 사이, 나에게 전태일 열사가 등장한 것이다.

갑작스런 만남 때문이었을까,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마음 한 구석이 어색하고 불편했으며, 따가웠다. 재봉틀에 손을 찔리는 모습, 폐쇄적이고 비좁은 공간에서 벌이를 위해 꾹 참고 일하는 사람들,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작은 빛줄기를 찾은 전태일, 종국에 자신을 불사르는 모습. 이 모든 게 실제 일어났던 일이라니 여간 먹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2020년 12월 현재, 전태일 열사가 까마득히 잊혀 질 수도 있었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조영래 변호사의 노력이 없었다면 말이다.

해당 평전이 일본에서 김영기라는 가명으로, 그리고 『불꽃이여, 나를 감싸다오(炎よ、わたしをつつむ)』라는 제목으로 처음 세상에 나오기까지 그는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이렇게 역경을 견디고 세상 밖에 나온 책인데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아직 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된 듯싶다. 2013년 한 대형 마트에서는 전태일 평전 소지자를 발본색원 한다는 미명 아래, 개인사찰까지 서슴지 않았다. 사실, 2010년에 경기도 부천점에서도 같은 사건이 있었다. 이들의 더욱 놀라운 태세전환은, 올해 12월 초에도 발생했다. 다른 대형 마트에서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출입을 불허해 논란이 있었던 게다. 이에, 앞선 대형마트(부천점)에서는 안내견 출입을 허가한다. 이 얼마나 대단한 대처인가? 사람에게 개만도 못한 대접을 하다니(안내견을 비하할 의도는 없다. 그들의 태도를 꼬집는 것이다).

■ 소년 전태일과 우리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는 노동자의 저변을 바꾸는 계기 중 하나였음에 틀림없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있지만 그의 희생을 통해 다수가 움직였고, 사회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그 덕에 우리는 지금, 자본을 어떻게 늘릴 것인지, 지킬 것인지를 삶의 초점으로 두고 있다. 이 발상 자체가 해악이라 할 것도, 잘못이라 할 것도 없다. 개인이 사유재산을 어떻게 벌었든, 그것으로 무얼 하든 그 누구에게도 침해 혹은 구속 받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단체도 마찬가지다. 공동의 이익이나 목적 달성을 재산으로 보았을 때, 이 또한 사유재산으로 치환할 수 있기 때문).

다만, 사유재산의 진정한 의미를 한번쯤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private property, privare, 빼앗다). 부당한 대우와 현실에 맞서 우리 스스로 권리를 찾는 한편, 이익을 위해 움직이면서 또 다른 누군가의 것을 빼앗거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또 다른 ‘소년 전태일’이 죽음에 몰리지 않도록, 부당한 것에는 힘껏 맞서도록 응원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되도록 우리 스스로 반문하고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